30년 전쟁(1618-1648) 당시 유럽 전역이 전란에 휩싸였으나 스위스는 직접적인 전장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토에는
피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용병으로 싸운 스위스인들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많은 수의 스위스인들이 이 전쟁에서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당시 강대국들은 스위스 용병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스위스는 국토가 전장이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있었습니다.
프랑스와 같은 나라는 스위스인 용병을 얻기 위해 스위스의 독립을 지지하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스위스가 영세중립국으로 인정받은 것은 1815년
빈 회의의 결과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빈 회의에서는 유럽 국가들 간에 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유럽을 개편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는데 스위스의 경우에는
독립이 재차 확인됨과 동시에 영세중립국으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습니다.(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랑스,
스웨덴, 포르투갈, 에스파냐)
또한 프랑스의 점령 하에 있었던 발레 주, 뉴샤텔 주, 제네바 주가 새롭게 연방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는 스위스 연방에
참여한 마지막 주가 됩니다.
이후 1840년대 부터 무장중립을 표방하게 되었고 1848년에 이르러 연방 헌법이 제정되었으며 연방 국가 체제가
확립된 것은 1874년 개정 연방 헌법 이후의 일입니다.
또한 1864년 알리 뒤낭이 적십자를 설립하여 제네바에 본부를 두었는데 적십자는 1차 세계대전(1914년~1918년)
기간 동안 스위스가 중립을 유지하는데 큰 힘이 되었고 전쟁 당사국 간에 회담 장소로 중립국인 스위스를 이용하게
되는 경우가 늘어나게 됩니다.
덕분에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20년 제네바에 국제연맹 본부가 설치됩니다